목록삶속의 신앙 나눔 (8)
가톨릭 신앙의 발걸음
매우 단순한 질문 하나를 던져 보겠습니다. “우리는 선한 삶을 살아야 하나요?” 길거리에서 아무나 붙잡고 이러한 질문을 던져보면, 백에 아흔 아홉은 그렇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요?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이것입니다. “어째서 우리가 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한발짝 더 나아가보지요. “무엇이 선한 것인가요?” 이쯤 오면 답이 많이 달라지게 됩니다. 누군가는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선한 것이라고 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누군가 희생 당하더라도 공동의 이익이 있으면 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런 질문들이 쓸데 없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질문들에 ..

지난 주 미사 파견 성가가 나올 때 쯔음에, 성당 천장에 그려진 그림을 바라 보았다. 예수님이 가운데 서 계시고, 제자들이 그 말씀을 듣는 모습이 그려진 그림을 보며 아 내가 저곳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주님과 함께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제서야 그 밑의 문구가 눈앞에 들어왔다. "KNOW THAT I AM WITH YOU" 그렇게 답을 주셨다. 내 비록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있지 않았어도 예수님께서는 이미 나와 함께 하고 계시며 항상 계셨다고 말이다.
주여 힘을 주소서. 제 마음에서 불안한 마음을 없애주시고,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주님께서 허락해 주신 능력으로 기쁜 마음으로 용기있게 헤쳐나가게 도우소서. 제 능력이 부족하여 힘이 필요할 때 성령께서 저를 이끌어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어제 잠을 자다가 태양 처럼 빛이나서 눈이 부신 형체를 보았다. 사람의 형상은 아니었지만 내가 주님을 드디어 보는 구나 꼭 보고 싶어 했는데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것이 성체의 형상이라고 생각을 했다. 크고 밝은 원형의 물체에 십자가와 같은 형상이 그림자 져 있었다. 보는 순간 온몸에 전기가 오르고 소름이 돋아서 두려움과 환희가 뒤섞인 감정을 느꼈다. 아침에 일어나서 기억을 하지 못하고 출근을 하다가 차에서 내려 구름 사이를 비추는 빛을 보고 생각이 났다. 그 빛은 눈동자 모양으로 나를 꿈뻑이며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 와이프는 새벽에 자기가 불을 켰던거 같다고 했다. 아마 눈이 부셨나 보다.
한 10년도 더 지난 날이 었습니다. 평생을 가톨릭 신자로 살았지만 그 전까지는 사실 제대로 성경을 읽으려고 시도해 본적이 없었지만, 이 때는 무엇인가에 이끌린 듯 몇 주 째 신약 성경을 들고 다니며 읽던 때 였습니다. 그 당시에 조그만 신약 성경을 주머니에 들고 다니면서 지하철을 탈 때면 꺼내서 읽다가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 있으면 표시를 해놓고는 했습니다. 이 날도 지금은 결혼하여 제 아들 요한과 바오로의 엄마가 된 제 당시 여자친구를 만나러 지하철을 타고, 종각역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는 마태오 복음을 읽고 있었습니다. 읽으면서 특히 25장 40절의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라는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아서 표시를 남겨 놓으면서 "이제부터는..
오늘 아침에 갑자기 미사를 가고 싶어졌다. 오랫동안 생각은 해왔는데, 평일 미사에 가는 것이 그렇게 쉬운일은 아니다. 마치 다녀오면 좋을 것을 알면서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게 꼭 헬스장 같다고 할까. 그런데 오늘은 무엇인가에 이끌린 듯 미사 시간을 확인하고는 8시 10분에 있는 오전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갔다. 평일 미사에 내 발로 스스로 가는게 몇년 만인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성당 문이 굳게 닫혀있다. 뭔가 착각을 한건가 하고 차에 타려는 기분이 유쾌하진 않았다. 그런데 어떤 할머니 한분이 지나가시길래 미사가 없냐고 물었다. 그분께서 답하시길 아이들 방학일때는 오전 7시 미사만 있고 8시 10분 미사는 없다고 했다. 감사하다고 돌아서려는데, 성당문을 열어줄테니 기도하러 가겠냐고 하신다. 그런것은 ..
우리는 대부분 이렇게 기도한다 "하느님 이것 도와주세요 저것 해주세요" 그리스도교 인으로 살면서 굉장히 쉽게 착각하게 되는 것이 있는데 그리스도교가 믿거나, 선행을 행하거나 해서 하느님의 복을 받거나 마음의 평안을 찾는 것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럴 때 하는 기도는 많은 경우 나. 나의 일. 그리고 나의 가족이 중심이다 이런 식의 생각은 지극히 인간적인 측면에서 이해가 쉽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신앙 생활의 계기가 되지만 거기에서 더 이상 발전하지 않고 멈추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은총은 우리의 믿음과 선행에 대한 포상이 아님을 자꾸 기억해야 한다 이는 순전한 하느님의 선물일 뿐이다 하느님이 우리 기도를 듣고 들어주시는 게 주된 것이 아니고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 위한 것도 주된..
†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1요한4,16) 이것이 근본적인 것이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사랑을 할때 하느님을 체험한다 요새들어서 이쁘게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서 무조건 적이고 무한한 사랑을 체험하고 그를 통해 하느님의 인간을 향한 무한한 사랑을 체험한다 때로는 아이에게 "안돼"라고 말하고 "화를 내고" "혼을 낸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이해하지 못하고 울고 때를 쓰고 슬퍼한다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하느님을 이해하지 못한다 마주친 좌절과 괴로움에 분노하고 화를 낸다 그러나 하느님은 사랑하신다 아니 사랑 그 자체이시다 하물며 우리와 하느님의 차이는 아이와 부모의 차이에 비견할 바 아닐 것이다 죽는 날까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세상 그 어떤 누구도 하느님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