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Today
Total
10-22 06:00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관리 메뉴

가톨릭 신앙의 발걸음

가톨릭 교회는 십계명을 수정하고 우상 숭배를 한다는 주장에 관하여 본문

가톨릭과 개신교

가톨릭 교회는 십계명을 수정하고 우상 숭배를 한다는 주장에 관하여

이상근 마태오 2024. 10. 17. 07:59

가톨릭 성당에는 다양한 성상과 성화가 있고 신자들이
그 앞에서 기도하곤 합니다.

우상 숭배에 대한 논의에서 종종 언급되는 오해 중 하나는, 가톨릭 교회가 십계명에서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계명을 삭제하거나 수정했다는 주장입니다. 그것부터 살펴봅시다.

실제로 가톨릭(왼쪽)과 개신교(오른쪽)의 십계명은 달라 보입니다.

가톨릭 교회의 십계명에는 2번 계명이 없습니다.
대신 개신교 십계명의 10번째 계명이 둘로 나뉘어 있습니다.

왜일까요? 가톨릭 교회에서 십계명을 정말로 감히 바꾸어버린것일까요?



십계명의 분류: 가톨릭과 개신교의 차이

십계명은 성경에서 두 차례에 걸쳐 나타납니다: 탈출기 (출애굽기) 20장신명기 5장. 이 계명들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도덕적 법률이며, 시대와 교파를 초월해 그 중요성이 유지되어 왔습니다. 

가톨릭 성경과 개신교 성경의 십계명 부분은 번역이 다를 뿐 내용은 같습니다.

(가톨릭 성경)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든, 땅 아래로 물속에 있는 것이든 그 모습을 본뜬 어떤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너는 그것들에게 경배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주 너의 하느님인 나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조상들의 죄악을 삼 대 사 대 자손들에게까지 갚는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는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푼다. 주 너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당하게 불러서는 안 된다. 주님은 자기 이름을 부당하게 부르는 자를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두지 않는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엿새 동안 일하면서 네 할 일을 다 하여라.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의 하느님을 위한 안식일이다. 그날 너와 너의 아들과 딸, 너의 남종과 여종, 그리고 너의 집짐승과 네 동네에 사는 이방인은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이는 주님이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안식일에 강복하고 그날을 거룩하게 한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러면 너는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주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이웃의 집을 탐내서는 안 된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 탐내서는 안 된다.
(개신교 성경 - 개역 개정)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가톨릭 성경과 개신교 성경의 십계명 부분은 번역이 다를 뿐 내용은 같습니다.

그럼 십계명이 왜 달라진 것일까요? 

왜냐면, 성경 텍스트 그 자체에는 “1계명, 2계명, ..” 이런식으로 명시 되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문장들의 연속으로 되어있는 계명들을 10개로 정리하기 위해서는 분류가 필요합니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십계명 분류 차이

1. 가톨릭의 분류: 성 아우구스티노의 전통

가톨릭 교회는 성 아우구스티노의 전통을 따라 십계명을 분류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탈출기 20,2-6에서 하느님께서 우상 숭배를 금지하신 내용을 첫 번째 계명에 포함시켰습니다. 첫 번째 계명은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와 함께 "어떠한 우상도 만들지 말라"는 명령이 결합된 것입니다. 이 분류는 하느님을 경배하는 것과 그분 외에 다른 것을 숭배하지 말라는 두 계명을 같은 계명이라고 본 것입니다.

대신 가톨릭은 십계명의 마지막 부분에서,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와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를 각각 아홉 번째와 열 번째 계명으로 나누어, 탐욕에 대한 경고를 구체적으로 분리합니다. 

2. 개신교의 분류: 유대인 전통

개신교는 유대인 전통에 따라 십계명을 분류합니다. 이 전통에서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과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계명을 별개의 계명으로 구분하여 첫 번째와 두 번째 계명으로 나눕니다. 우상 숭배의 경고를 독립적인 계명으로 강조함으로써, 그 중요성을 부각시키고자 했습니다.

반면, 개신교는 마지막 계명을 하나로 묶어 "남의 아내나 재물을 탐내지 말라"를 하나의 계명으로 간주합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모든 탐욕적 욕망을 한 번에 경고하신 것이라고 해석하는 방식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354-430)는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 중 한 명으로,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에서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의 일원이었으며, 아우구스티노의 저작을 읽고 그의 신학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십계명 분류는 가톨릭만의 것이 아니다

가톨릭 교회의 십계명 분류 방식은 가톨릭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루터교와 같은 개신교 교파에서도 사용됩니다. 루터교 역시 성 아우구스티노의 전통을 따르며 십계명을 분류합니다. 따라서 십계명을 가톨릭 교회만 독자적으로 사용하거나 변형했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가 우상 숭배하기 위해 십계명을 변개했다는 주장은 성 아우구스티노와 루터교도 그렇게 했다는 주장이 됩니다.

가톨릭 교회는 하느님을 경배하라는 첫 번째 계명에 포함된 우상 숭배 금지를 강조하며, 이를 교리서(CCC 2112-2114)에서 명확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톨릭 교회가 우상 숭배 금지를 십계명에서 일부러 없앴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습니다.

2112 첫째 계명은 다신교를 단죄한다. 첫째 계명은 인간에게 하느님 밖에 다른 신들을 믿지 말 것과,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 밖에 다른 신들을 공경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성경은 우상들에 대해 이렇게 거부할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저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 사람 손의 작품이라네.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나이다”(시편 115[113 하],4-5). 이러한 헛된 우상들은 인간을 공허한 존재로 전락시킨다. “우상을 만드는 자들도 신뢰하는 자들도, 모두 그것들과 같네”(시편 115[113 하],8).(40) 이와 반대로, 하느님께서는 살게 하시고 역사에 개입하시는 “살아 계신 하느님”(여호 3,10)이시다.(41)
2113 우상 숭배는 단지 이교(異敎)의 그릇된 예배에만 관계되는 것은 아니다. 우상 숭배는 신앙에 끊임없는 유혹이 된다. 우상 숭배는 하느님이 아닌 것을 신격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잡신이나 마귀(예를 들어 악마 숭배), 권력, 쾌락, 인종, 조상, 국가, 재물 등 인간이 하느님 대신에 어떤 피조물을 숭배하고 공경한다면 이는 우상 숭배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라고 말씀하셨다. 많은 순교자들이 “짐승”을(42) 섬기지 않으려고, 짐승을 예배하는 것을 흉내내는 것까지도 거부하여 죽어 갔다. 우상 숭배는 하느님께서 유일한 주님이심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상 숭배는 하느님과의 친교와 양립될 수 없다.(43)
2114 인간의 삶은 한 분뿐이신 하느님에 대한 흠숭 안에서 통일을 이룬다. 유일하신 주님을 흠숭하라는 계명은 인간을 단순하게 하고 끝없는 분열에서 구한다. 우상 숭배는 인간 본성인 종교심의 타락이다. 우상 숭배자는 “하느님보다는 다른 어떤 것에 하느님이라는 불멸의 개념을 부여하는”(44) 자이다.

우상 숭배와 십계명의 본질

십계명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것이 단순히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기 위한 도덕적 지침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상 숭배에 대한 계명 역시 하느님 이외의 어떤 것도 숭배해서는 안 된다는 도덕적 원칙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의 교리서(CCC 2113)는 우상 숭배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우상 숭배는 하느님이 아닌 것을 신격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잡신이나 마귀(예를 들어 악마 숭배), 권력, 쾌락, 인종, 조상, 국가, 재물 등 인간이 하느님 대신에 어떤 피조물을 숭배하고 공경한다면 이는 우상 숭배가 되는 것이다. "

즉, 우상 숭배는 다른 신을 섬기는 것 뿐 아니라 권력, 명예 등 세속적인 것을 하느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추구하는 모든 행위를 포함합니다.

우상 숭배와 성상이나 성화 사용의 차이?

가톨릭 신자들이 성상과 성화를 사용하는 이유는 그것들을 하느님 대신에 숭배하고 공경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의 사진을 가지고 다니며 그 사람을 기억합니다. 비슷하게 성상과 성화는 하느님을 더 잘 묵상하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깊이하는 도구로 사용됩니다. 하느님께로 향하는 우리의 마음을 도와주는 수단입니다. 성상이나 성화 자체를 신으로 숭배한다면 그것은 우상 숭배가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이러한 예가 나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구리뱀을 만들어 매달라고 하셨고, 이를 바라본 이스라엘 백성들이 치유를 받았습니다 (민수기 21,8). 그러나 나중에 그 구리뱀이 신격화되자, 히즈키야 왕은 그것을 파괴했습니다 (열왕기 하 18,4). 이 사건은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물질적인 상징물은 하느님을 섬기는 도구로 쓰일 수 있지만, 그것이 하느님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변질되면 우상 숭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금으로 커룹 둘을 만드는데, 속죄판 양쪽 끝을 마치로 두드려 만들어라. 커룹 하나는 이쪽 끝에, 다른 하나는 저쪽 끝에 자리 잡게 만들어라. 그 커룹들은 속죄판 양쪽 끝에 만들어야 한다.커룹들은 날개를 위로 펴서 그 날개로 속죄판을 덮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게 하여라. 커룹들의 얼굴은 속죄판 쪽을 향해야 한다. (탈출기 25:18-20)

개신교에서도 사용하는 신앙 표현들

개신교 신자들도 성상 사용과는 다른 방식으로 상징적인 신앙 표현을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와 같은 절기 때 예수님의 탄생 장면을 묘사하는 다양한 장식품과 상징들이 사용됩니다. 크리스마스 트리, 예수님의 탄생 장면을 담은 그림, 또는 종교적인 행진들이 그 예입니다. 이러한 상징들은 신앙을 고취시키고 하느님을 기억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과 구유를 그린 그림이나 모형을 개신교 교회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결론: 우상 숭배는 하느님 아닌 것을 하느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길 때 발생한다

우상 숭배의 본질은 우리가 하느님 이외의 것을 하느님 앞에 두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가톨릭 교회는 우상 숭배를 분명히 금지하며, 성상이나 성화는 하느님을 향한 마음을 더욱 깊게 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됩니다. 또한 십계명의 분류 차이는 단순한 전통의 차이일 뿐, 본래의 계명을 수정하거나 삭제한 것이 아닙니다.

초대 교회의 카타콤에는 그들의 신앙을 표현한 벽화들이 남아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 역시 우상 숭배가 아니라 오감을 통해 느끼고 표현하는 우리들의 자연스러운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 인 것입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조같은 위대한 작품,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담은 영화 패션오브크라이스트, 그리고 어린이들을 위해 성경 그림책, 이런 것들이 과연 예수님의 모습을 본따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우상이 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 더 중요한 것일까요? 한번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