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Today
Total
11-22 01:55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관리 메뉴

가톨릭 신앙의 발걸음

성체와 성혈의 신비 본문

가톨릭 신자는 무엇을 믿나요?

성체와 성혈의 신비

이상근 마태오 2020. 6. 19. 23:31

"그 무렵 살렘 임금 멜키체덱이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였다." (창세 14,18)

창세기의 멜키체덱이 아브람 (후의 아브라함)을 축복하며 가지고 나온 빵과 포도주의 의미는

신약에서 성체 성사를 제정하시는 예수님을 통해 그 완전한 의미를 드러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체포 되기 전날 밤 최후의 만찬에서 손수 성찬례를 제정하십니다.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또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니 모두 그것을 마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마르코 14, 22)

가톨릭 교회는 미사 때 사제의 손에 의해 축성된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하는 성변화transubstantiation)를 가르칩니다. 다른 말로는 축성의 예식이 예수님을 기억하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분명 축성을 한 후의 빵과 포도주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본들 여전히 빵과 포도주일터인데 어찌 이것을 믿을 수 있을까요?

철학적인 용어를 사용해보면, 가톨릭 교회는 비록 빵과 포도주의 드러나는 모습 (accident)가 그대로일 지언정, 그 본질 (substance)는 예수님의 몸과 피로 온전히 변화한다고 가르칩니다. 

어쩌면 이런 의문이 들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한 낱 빵과 포도주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된단 말인가요? 단순한 상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은가요?" 라고요.

마치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요한 15,1) 라고 했다고 해서 성부께서 진짜 농부가 아니시며, 예수께서 진짜 포도나무가 아니시듯 말입니다. 그러나 비유와 상징을 통해 많은 것을 설명하신 예수께서 성체와 성혈에 관해서는 그것이 단순한 비유가 아님을 명확히 하십니다.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 (마태 26, 26)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요한 6,51)

이러한 가르침을 들은 유다인들은 그것에 대해 매우 당황합니다. 구약의 율법에서 동물의 피는 생명이 들어있는 것으로 먹어서는 안되는 것인데, 심지어 동물도 아닌, 사람의 살과 피를 먹으라니 그것은 매우 불경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말다툼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러자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요한 6, 52)

그러나 예수의 반응은 "이것은 비유이다. 오해하지 말라"가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가르침을 오히려 다시한번 강조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요한 6:53)

그리고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요한 6:66)

그리고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요한 6:67)

예수께서는 이 빵은 내 몸을 "상징"한다, 혹은 이 피는 내가 계약을 위해 흘릴 피의 "비유"이다 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가르침을 명확히 하시고 이를 행하라고 말씀하셨고 이를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났음에도 잡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이 신비를 믿지 못한다면, 이 날 자리를 떠난 제자들 중 하나가 되는 것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루카 22,19) 

예수님의 명하심에 따라 오늘 날에도 이 성찬례의 신비는 매 미사마다 기억하며 행해지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미리 드러나는 성체 성사의 신비를 살펴보는 것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양들의 음식인 여물을 담는 "구유" (루카 2:7) 에 누워계셨던 아기 예수님은 진정한 양들의 음식이 되시기에 오셨음을 드러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지만 (요한 6:49), 하늘에서 내려온 새 빵인 예수 그리스도를 먹는 사람은 영원이 살 것이다 (요한 6:59) 라고 성경은 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새로운 파스카임을 기억 해봅시다. 하느님께서는 흠없는 수컷 양을 잡아 그 피를 받아 문설주에 바르고 그날 밤 그 고기를 먹으라고 명하셨습니다 (탈출기 12:5-8).

가톨릭 교회는 많은 다른 교파들과 달리 단순한 상징이나 함께하심, 임재하심등으로 성체와 성혈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미사 때마다 예수님의 희생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단 한번의 완전한 희생으로 완전한 죄사함을 이루셨지만, 특별한 은총으로 그 희생 제사에 우리가 매 미사마다 참여할 수 있는 것은 기적이며 신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코린토 1서 11,26)

그리스도의 옷깃만 잡아도 치유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우리 몸안에 모실 수 있음은 정녕, 가톨릭 신앙을 가진 우리 신앙인들의 커다란 은총이며 자부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