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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앙의 발걸음

그리스도교/기독교에 대한 짧은 이해를 위한 글 본문

가톨릭 신자는 무엇을 믿나요?

그리스도교/기독교에 대한 짧은 이해를 위한 글

이상근 마태오 2020. 6. 19. 23:32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사람들이 굳이 누구에게 물어볼 정도는 아니지만, 많은 비종교인들이 기독교에 어느정도 호기심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글의 목적은 그런 분들에게 굳이 선교하겠다거나 개종을 권하겠다는 것이 아닌, 지적 호기심을 어느정도 채워주고자 함에 있다. 이미 신앙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이 글을 읽을 경우에도 어느정도 유익한 글이 되기를 목표로 하여 이 글을 시작한다.

 

시작에 앞서 필자는 천주교인임을 밝히며, 천주교와 개신교의 차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루겠지만, 이 글이 다루는 내용은 기독교 전반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천주교(가톨릭)과 개신교는 모두 기독교이다. 따라서 기독교/천주교 라는 분류는 옳지 않다.) 의 공통적인 내용을 다룬다.   

 

# 1. 유일신을 믿는 종교

 

일단, 기독교는 유일신을 믿는 종교이다. 그러면 '신'은 무엇일까? 여기서의 '신'이란 인간을 초월한 어떠한 존재를 말한다. 기독교의 믿음은 이 인간을 초월한 어떠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그 인간을 초월한 존재는 단 하나 뿐이며 세상 모든 것의 근원임을 믿는다. 그리고 이 '신'이 단순히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인격적인 존재임을 믿는다.  

 

여기까지는 기독교 이전의 유대인들의 민족 종교인 유대교가 믿던 개념과 같다. 하지만 예수라는 인물의 드라마틱한 삶과 가르침은 유대교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놓았고, 이 새로운 믿음은 기독교가 된다. 유대교 입장에서는 소위 '이단'이었던 기독교는 처음에는 이런저런 박해를 받았지만,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는 것을 계기로 세상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많은 신자들이 기독교를 믿게 된다. 시간이 지나고 하나였던 기독교는 종교 개혁 등등의 사건으로 여럿(천주교, 개신교, ...)으로 갈려지게 된다. 기독교의 '기독'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리스도'의 한자병음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예수라는 인물을 떠나서는 설명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예수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 2. 예수라는 인물

 

예수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유대교에 대해서 간단하게 정리하고 넘어가자. 앞에서 정리했던 대로 유대교는 유대인들이 믿던 종교이다. 그들은 '야훼(여호와)'라고 하는 신 - 하느님 -이 세상을 창조했고 그들과 함께 했다고 믿어왔다.

 

구약 성경은 그들이 기록한 역사와 전승되어온 하느님의 가르침이 담겨있는 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유대민족에게 있어서 그들에게 내려오는 하느님 가르침, 즉 '율법'은 무지막지하게 신성한 것이였고, 이를 지키는 것은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었다. 지켜야 할 별의 별 내용들이 많았는데, 밥먹기 전에 손을 씻으라는 것부터 안식일에는 일을 하면 안된다고 하는 것, 간음한 여자는 돌로 쳐죽이라는 등등 하여간 무지하게 많은 것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율법을 지키는 것은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것이었고,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죄가 되었고, 죄를 속량하기 위해서는 성전에 제물을 바쳐야 했다.

 

뭐 그러다보니 여러가지로 없는 사람들은 당연히 힘들었을 것이다. 유전 무죄 무전 유죄. 죄인은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아니었고 병은 죄의 결과 였다. 게다가 죄인과 어울리는 것은 금기시 되는 행위었다.  

 

예수의 시대에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에 식민지배를 받고 있었다.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치하에 지배를 받은 것과 비슷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구약성경에 다뤄진 내용은 율법 말고도 중요한 것이 하나가 더 있었는데, 바로 '구세주 (메시아, 그리스도)'의 등장에 대한 예언이다. 유대 민족은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 이 '구세주'를 간절히 기다려 왔다. 로마가 지배하는 이 세상을 뒤집어 엎고, 강력한 유대 국가, 하느님의 국가를 세우는 것이 그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일이 었다.  

 

이런 세상에, 예수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세상에 이런저런 가르침을 전하자, 사람들은 매우 크게 동요했다. 일단 그 행동과 내용이 굉장히 파격적이었을 뿐 아니라 그 가르침이 전례없이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야기하면 끝도 없지만, 예를 들면 - 금기시 되던 행위였던 소위 죄인들 (창녀들, 세리들, 가난한 자들, 병든 자들 등 당시 죄인 취급을 받안 던 사람들)과 어울리고 다니는 것이라던가, 형식 중심의 율법을 타파하고 비판하는 것, 하느님의 권위하에 기적을 행사하는 것, 유대인 뿐 아니라 다른 민족들의 구원을 설교하는 것, '용서'와 '사랑'을 설파하는 것 등등이다.

 

많은 민중들은 그의 가르침에 감동하였고, 그를 따랐다. 죄인이라고 무시받고 박해받던 자들이 특히 그랬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예수가 '구세주'가 아닐까 하고 기대했다. 예수가 로마가 지배하는 이 세상을 뒤집어 엎고 하느님의 나라를 세워주길 기대했다.  

 

그렇지만 전통적인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들 입장에서 보면 기득권에 대한 매우 거룩하지 못하고 불경한 도전으로 보였다. 당연히 눈에 가시였다. 결국, 로마 제국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는 명목하에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혀서 사형 당하게 된다. 이러한 배경에는 세속적 구세주를 기다리던 민중들의 실망감도 함께 작용했다. 예수는 세속에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거나 로마를 몰아내는 데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 3. 십자가에 못박히다

 

결국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는 인류를 구원했다. 이 무슨 뜬금 없는 소리인가?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었다라고 하는 말을 들어 본 바가 있을 것이다. 근데 왜?

도대체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서 죽은 것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었다고 하는 것일까? 그냥 그렇다고 믿으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이유가 있지않겠는가? 어떻게 전혀 관련없어보이는 이 두 가지, 예수의 희생과 인류의 구원이 연결된 것일까?

 

하지만, 그 당시 제자들은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마냥 자연스럽게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을 보며 깨달았다. '아 저 사람이 우리의 죄사함을 위해 대신 죽었구나' 하고 말이다.

 

이것은 그 당시 유대인들의 문화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문화 근간을 이루는 구약 성경에 보면, 우리가 종종 들어 알고 있는 '출애굽기' 혹은 '탈출기'의 사건이 나온다.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할때, 열번째 재앙이 바로 맏아들을 다 죽여버리는 무시무시한 재앙이었는데, 모세 (바다를 가르며 유대민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키던 그 예언자) 는 이스라엘 집 사람들의 문에 흠없는 어린 양의 피를 발라 놓으면 재앙이 피해갈 것이라는 계시를 받게 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문에 어린양의 피를 발라 놓았고, 결국 하느님의 심판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피해가게 된다. 

 

이것이 시간이 지나서 유대인들의 문화가 되는데, 과월절(혹은 유월절)날이 되면 흠없는 어린 양을 잡아서 나눠 먹었다. 당연히 이것의 의미는 하느님으로부터의 죄에 대한 심판으로 부터 구원받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예수는 죽기 전날 밤, 때는 유월절, 제자들을 모아서 소위 '최후의 만찬'을 한다. 빵을 먹으면서, 제자들아 이게 내 몸이니 나눠먹으라고 말하며 나눠주었다. 또,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나눠 주며 이것이 나의 피이니 이를 나눠 먹고 이를 나를 기억하며 행하라고 말한다. 제자들은 무슨 소리인가 하고 어리둥절 했다.  

 

하지만 다음 날,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후 제자들은 갑자기 깨닫는다. 우리가 나눠먹은 것이 예수의 몸이고 피라는 이야기가 곧 예수가 우리를 위해 바쳐진 제물 '흠없는 어린양'이라는 뜻이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예수는 '메시아(구세주)'였다. 하지만 그들이 처음에 기대하던 메시아는 아니었다. 예수의 구원은 세속의 로마로부터의 구원이 아니었고, 본질적인 '죄'와 그에 대한 '심판'으로부터의 구원이었다.

 

예수가 이야기했던 하느님의 나라는 로마를 몰아내고 세운 세속의 나라가 아니라 영적인 나라였다. 누군가에겐 실망이었겠지만, 그 파급력은 오히려 컸다. 사건이 워낙 드라마틱하다보니, 예수의 죽음 그리고 부활 사건 (이를 믿을 수 있느냐는 논외로 하고) 뒤에 제자들의 믿음은 더욱 굳건해지게 된다. 파스카 뿐 아니라 구약의 많은 내용들이 이 십자가 처형 사건과 부활을 암시한다. 누가 지금 읽어보아도 구약의 이사야 53장은 거의 예수의 고난과 희생, 그리고 부활을 예언했다고 볼 수 있을 정도이다.

 

초기의 교회 때는 사실 그 믿음이라는 것이 여러 형태로 존재했다. 이후에 여러 공의회 등을 거친 노력끝에 기독교 교리의 핵심은 삼위 일체, 즉 예수가 곧 하느님이며 하느님의 아들이며 성령이라는 삼위 일체의 믿음으로 다져지게 된다.

 

사실 교리 자체보다 중요 한 것은 이제 더 이상 기독교는 유대인들에 의한 유대인을 위한 종교가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예수라는 인물에 의해 권위와 형식을 타파하고, 이웃 사랑과 하느님 사랑을 전하고, 유대인 뿐만이 아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모두 구원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이야기 하는 종교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이런저런 박해를 받았지만, 로마의 국교로 인정받게 되면서 기독교는 여전히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종교로 여전히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   

 

#4. 마무리

 

글을 쓰다보니 원래 쓰려고 했던 것보다 훨씬 빈약한 글을 쓰게 되어 실망스럽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 조금이라도 비기독교인들의 기독교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바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많이 느끼는 것이 성경에서 예수가 그렇게 비판했던 율법학자들의 모습을 우리는 현대 기독교에서 많이 발견하고는 한다. 이 글이 기독교인들에게는 우리가 믿는것이 무엇인가 돌이켜볼 기회가 되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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