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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앙의 발걸음

가톨릭 교회의 연옥에 대한 개념의 이해 본문

가톨릭과 개신교

가톨릭 교회의 연옥에 대한 개념의 이해

이상근 마태오 2020. 6. 19. 23:31

가톨릭 교회에서 말하는 "연옥"이란 무엇이며 성경적 근거가 무엇이고, 어떻게 이해해야하는지에 대해서 제가 이해하는 범위 내에서 정리해 보면 좋을 것 같아서 글을 시작합니다.

 

연옥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전에 천국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천국, 그러니깐 '하느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통해 죄 사함을 받고 구원 받은 의인 들이 부활을 기다리며 완전한 하느님과의 일치, 온전한 행복을 누리는 곳입니다. 천국에 '죄'를 위한 자리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 아주 작은 죄나 그 영향이나 결과라도 말이지요.

 

참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맞이 하기 전까지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은총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할 것입니다. 회개하지 못하고 넘어간 소소한 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죄를 용서 받은 후에도 죄의 결과들과 후회와 같은 것들이 남아 있는 상태로 죽음을 맞이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분명 구원 받은 이들이지만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일종의 정화(purification)을 통해 하느님 앞에 합당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고 교부들은 생각했습니다. 이 최종 정화의 과정 가톨릭 교회는 "연옥 (purgatory) "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라틴어로는 푸르가토리움(Purgatorium) 이며 purge (정화하다) 라는 동사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연옥은 장소의 개념이 아닙니다. 그리고, 연옥은 구원받은 이들이 천국에 가기 위해 필요한 정화의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지, 착하지도 못되지도 않은 애매한 사람들이 가는 중간 장소 또한 아닙니다.

 

연옥의 개념이 우리의 일상 생활 그리고 살아있는 우리의 신앙과 관련이 있는 것은 어떤 점이 있을까요?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죽은이들을 위한 기도" 입니다. 연옥의 존재를 믿지 않는 개신교에서는 죽은이들을 위한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옥에 간 이들은 영원히 그 곳에서 나올 수 없으며, 천국에 간이들에게는 기도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가톨릭 교회에서는 연옥의 존재를 가르치며, 따라서 죽은이들을 위한 기도를 합니다. 연옥의 상태에 있는 영혼들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구원받을 수 있도록 청하는 것이 기도의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은이들을 위해 추모하고 기도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 행위이기에 저는 가톨릭 신앙이 연옥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이 큰 위로입니다. 늦은 나이에 세례를 받으시고 돌아가신 사랑하는 외할머님의 영혼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교회의 전통은 초기부터 죽은 이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미사를 봉헌해 왔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피렌체공의회(1439년)와 트리엔트공의회(1563년) 등 여러 공의회를 통해 연옥의 존재를 공식 인정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연옥의 성경적인 근거는 무엇이 있을까요? '연옥'이라는 단어는 성경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존재를 유추할 수 있는 구절들은 성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2마카 12:44) 그가 전사자들이 부활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면,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쓸모없고 어리석은 일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구약의 마카베오2서에서 죽은이들을 위한 기도가 나오며, 죄를 짓고 죽은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됨을 드러내는 구절로써 전통적으로 가톨릭 교회는 이 구절을 연옥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종교 개혁을 통해서 개신교가 가톨릭 교회의 73권의 성경을 모두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고 66권만 정경으로 인정하면서 빠진 마카베오2서는 가톨릭 입장에서는 성령의 영감을 받은 성경이지만 개신교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다른 개신교와 공유하는 성경 구절을 통해서도 우리는 연옥의 존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1고린토 3:14-15) 심판 날에 모든 것이 드러나기 때문에 저마다 한 일도 명백해질 것입니다. 그날은 불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저마다 한 일이 어떤 것인지 그 불이 가려낼 것입니다.  어떤 이가 그 기초 위에 지은 건물이 그대로 남으면 그는 삯을 받게 되고, 어떤 이가 그 기초 위에 지은 건물이 타 버리면 그는 손해를 입게 됩니다. 그 자신은 구원을 받겠지만 불 속에서 겨우 목숨을 건지듯 할 것입니다.

 

1고린토 3장은 심판 날, 우리가 삶을 통해 지은 건물이 불 속을 통과 하며 구원을 향해 정화 되는 과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겠지만 겨우 목숨을 건지듯 할 곳은 어디일까요? 

 

또한 마태오 복음 12장 32절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은 우리가 내세에서 용서 받을 수 있는 죄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으며

 

마태오 복음 5장 6절의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분명 영원히 나오지 못하는 지옥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연옥과 죽은이들을 위한 기도는 비성경적이거나 비그리스도교 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동방 정교회는 “연옥”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지만 죽은이들을 위한 기도를 합니다. 성공회와 루터교의 일각에서도 연옥의 개념이나 이와 비슷한 개념을 수용합니다. 동방 가톨릭 교회는 “마지막 정화”라는 말을 사용하긴 하지만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명한 개신교 신학자인 C.S. Lewis 또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연옥을 필요로 합니다 그렇지 않나요? (Our souls demand Purgatory, don’t they?)”.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하였습니다.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하신 희생 제물이 되셨습니다.  하지만 천국 문 앞에선 참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하느님께 온전히 합당한 상태가 되길 원할 것이고, 정화의 길을 택할 것입니다. 그것이 연옥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살아있는 영혼들과 천국에 들어선 영혼들이 그 정화의 길에 함께 기도로써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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